“영양제는 자연 성분이니 약이랑 같이 먹어도 괜찮겠지” — 만성질환으로 약을 복용 중인 분들이 흔히 하는 오해입니다. 실제로는 혈압약이나 당뇨약과 상호작용해서 약효를 떨어뜨리거나, 반대로 부작용 위험을 키우는 영양 성분들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혈압약, 당뇨약 순서로 대표적인 사례를 정리했습니다.
⚠️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며, 의학적 진단이나 처방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복용 중인 약과 영양제 조합은 반드시 의사·약사와 상의하세요.
혈압약 복용 중이라면 주의해야 할 성분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다면, 아래 성분들이 약효를 상쇄시키거나 반대로 혈압을 과도하게 떨어뜨릴 수 있어 특히 주의가 필요합니다.
감초·칼륨 보충제, 혈압약 효과를 흔들 수 있습니다
감초(리코리스) 성분이 들어간 건강식품은 체내에서 나트륨을 저장하고 칼륨을 배출시켜 혈압을 오히려 높일 수 있어, 혈압약의 효과를 상쇄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칼륨 보충제는 ACE억제제나 ARB 계열 혈압약과 함께 복용하면 혈중 칼륨이 과도하게 높아지는 고칼륨혈증 위험이 커질 수 있습니다.
세인트존스워트, 광범위한 상호작용의 대표주자
세인트존스워트는 간의 약물 대사 효소(CYP3A4)와 장의 약물 수송 단백질(P-당단백질)을 동시에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상호작용 위험이 특히 높은 허브로 꼽힙니다. 이런 작용 때문에 혈압약, 스타틴 계열 콜레스테롤약뿐 아니라 면역억제제, 항응고제, 경구피임약 등 광범위한 약물의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우울감 완화 목적으로 이 성분이 든 제품을 고려하고 있다면, 복용 중인 다른 약이 있는지 반드시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2025년 국제학술지 J Pharmacol Exp Ther에 발표된 연구는, 사람의 약물대사 효소를 그대로 갖도록 만든 ‘휴먼화 마우스’ 모델을 이용해 세인트존스워트가 CYP3A4를 얼마나 강하게 활성화시키는지 정량적으로 확인했습니다. 연구팀은 세인트존스워트를 함께 투여했을 때 코르티코스테로이드 계열 약물의 체내 노출량이 뚜렷하게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는데, 이는 같은 CYP3A4 경로로 대사되는 여러 혈압약·콜레스테롤약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녹차 추출물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NIH 산하 NCCIH는 고용량 녹차 추출물이 혈압약인 나돌올(베타차단제 계열)의 혈중 농도를 낮춰 약효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녹차 추출물은 콜레스테롤 저하제인 아토르바스타틴의 혈중 농도도 낮출 수 있다고 알려져 있어, 고지혈증을 함께 관리하는 경우라면 더욱 주의가 필요합니다.
(참고: NCCIH – Herb-Drug Interactions)
자몽(그레이프프루트)과 칼슘채널차단제·스타틴
자몽에 들어있는 성분은 장에서 약물을 분해하는 효소(CYP3A4)를 억제해, 일부 혈압약(칼슘채널차단제 계열)뿐 아니라 스타틴 계열 콜레스테롤약, 항혈소판제의 혈중 농도까지 비정상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경우 약효가 과도하게 나타나면서 혈압이 위험할 정도로 급격히 떨어지거나 부작용이 커질 수 있습니다. 세인트존스워트가 CYP3A4를 ‘활성화’시켜 약물 농도를 낮추는 것과는 정반대로, 자몽은 CYP3A4를 ‘억제’해서 약물 농도를 높인다는 점이 흥미로운 대조를 이룹니다. 자몽 주스뿐 아니라 자몽 추출물이 포함된 영양제도 같은 위험이 있을 수 있어 성분표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며, ‘영양제’가 아닌 평범한 식품이라도 복용 중인 약물의 대사 경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즐겨 먹는 음식까지 함께 점검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디곡신 복용자는 감초를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부정맥이나 심부전 치료에 쓰이는 디곡신을 복용 중이라면, 감초(글리시리진) 성분이 든 제품을 피해야 합니다. 감초가 체내 칼륨 수치를 낮추는데, 칼륨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디곡신의 독성이 더 쉽게 나타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어 부정맥 위험이 커질 수 있습니다.
(참고: American Heart Association – Medication Interactions: Food, Supplements and Other Drugs)
비타민K와 항응고제, 혈압 관리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고혈압 환자 중 심방세동 등으로 와파린 같은 항응고제를 함께 복용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비타민K는 와파린의 작용을 방해할 수 있어, 녹색 잎채소나 비타민K 보충제 섭취량이 급격히 변하면 약효가 불안정해질 수 있습니다. 여러 만성질환을 동시에 관리하는 경우일수록, 새로운 영양제 하나를 추가할 때마다 전체 처방 목록과 교차 검토하는 습관이 특히 중요해집니다.
스타틴 복용 중이라면, CoQ10 보충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고혈압·당뇨와 함께 콜레스테롤 관리를 위해 스타틴 계열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타틴은 콜레스테롤 합성 경로뿐 아니라 체내 코엔자임Q10(CoQ10) 합성 경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스타틴 복용 후 나타나는 근육통이 CoQ10 수치 저하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을 제기하며, CoQ10 보충제가 이런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다만 모든 연구에서 일관된 효과가 확인된 것은 아니어서, CoQ10 보충이 ‘필수’라기보다는 스타틴 관련 근육통이 있을 때 의료진과 상의해볼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당뇨약 복용 중이라면 주의해야 할 성분
당뇨약을 복용하고 있다면, 아래 성분들이 저혈당 위험을 높이거나 약물 흡수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계피·여주·인삼·크로뮴, 저혈당 위험
계피, 여주, 인삼, 크로뮴 등은 자체적으로 혈당을 낮추는 작용이 보고된 성분들입니다. 문제는 이미 혈당을 낮추는 약을 복용 중인 상태에서 이런 성분을 함께 섭취하면, 혈당이 예상보다 더 떨어져 저혈당 증상(떨림, 식은땀, 어지러움)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인슐린이나 설포닐우레아 계열 약물을 쓰는 경우 더 주의가 필요합니다.
알파리포산(ALA)도 예외가 아닙니다
알파리포산은 항산화 성분으로 인기가 있지만, 자체적으로 혈당을 낮추는 작용이 보고되어 있어 인슐린이나 경구 혈당강하제와 함께 복용하면 저혈당 위험이 커질 수 있습니다. 특히 신경병증 완화 목적으로 고용량 알파리포산을 복용하는 당뇨 환자라면, 혈당 수치를 더 자주 확인하며 약물 용량 조정이 필요할 수 있어 처방의와 상의가 중요합니다.
철분제와 당뇨약의 흡수 경쟁
고용량 철분 보충제는 일부 경구 당뇨약(특히 일부 계열)의 흡수를 방해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어, 두 가지를 함께 복용해야 한다면 시간 간격을 두는 것이 권장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확한 간격은 처방받은 약의 종류에 따라 다르므로, 철분제를 새로 시작할 때 담당 약사에게 복용 시간대를 문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신장 기능이 저하된 당뇨 환자, 칼륨 보충제도 주의해야 합니다
앞서 다룬 ACE억제제·ARB 계열 혈압약과 칼륨 보충제의 상호작용은, 신장 기능이 이미 저하된 당뇨 환자에게서 특히 위험도가 높아집니다. 당뇨는 만성적으로 신장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표적인 질환이기 때문에, 칼륨 배출 능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혈압약과 칼륨 보충제를 함께 복용하면 고칼륨혈증으로 인한 부정맥 위험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바나나, 견과류 등 칼륨이 풍부한 식품 위주의 식단 변화도 이런 환자에게는 주치의와 미리 상의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혈압약·당뇨약을 함께 복용 중이라면
고혈압과 당뇨를 함께 관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는 상호작용 가능성이 있는 성분이 늘어나는 만큼 새로운 영양제를 시작하기 전 목록 전체를 병원에 공유하는 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오메가3처럼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진 성분도 고용량으로는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 혈압약과 함께라면 저혈압 증상을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전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새로운 영양제를 시작할 때는 소량으로 먼저 시도해보고, 시작 후 1~2주는 평소보다 혈압이나 혈당을 자주 체크합니다. 제품을 고를 때는 제품명이 아니라 원료명(성분명) 기준으로 확인한 뒤 약사에게 문의하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온라인 상호작용 검색 도구도 참고할 수 있지만, 개인의 건강 상태와 신장·간 기능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 판단은 결국 약사·의사와의 상담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병원 진료 시에는 처방약뿐 아니라 먹고 있는 모든 영양제와 한방 제품까지 빠짐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상호작용 사고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